MATSUGAOKA CRAFT PARK

5th 한국어

5A

종합안내

어서 오세요, 마쓰가오카 개척장의 5번 잠실에

국가 지정 사적 ‘마쓰가오카 개척장’은 메이지 5년(1872)에 쇼나이 일대의 지원 아래, 구(旧) 쇼나이번 무사들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나라에 공헌하는 것으로 보신전쟁에서 진 오명을 벗자’라며 광대한 황무지를 개척하여 잠실을 짓고 양잠·잠종(누에씨) 제조·제사업을 시작한 장소입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의 모습이 남아있는 잠실 5동이 현존하고 있어 개척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 5번 잠실에서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양잠을 위한 특징적인 건축 구조를 견학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설 패널 배치도

관내는 패널 순서에 따라 관람하세요

※촬영 가능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마쓰가오카 개척장 잠실의 특징적인 구조

섬세한 누에를 기르기 위한 건물

잠실은 섬세한 누에를 기르기 위한 건물입니다. 개척사들은 죠슈시마무라(현재의 군마현 이세사키시 사카이시마무라)의 다지마 야헤이(田島弥平)가 개발한 ‘청량육’이라는 근대 양잠법에 적합한 시마무라식 잠실을 참고로 잠실을 지었습니다. 2층에는 통풍을 조절할 수 있는 ‘주마창’과 누에들이 부드러운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장지를 설치하고, 3층에는 실내 공기를 순환, 환기시키하기 위한 ‘소슬 지붕’을 설치했습니다. 또한, ‘생나무 장작’을 이용한 바닥난방 기법을 도입하여 애누에를 ‘온난육’으로 길렀습니다.

2층의 주마창
3층의 소슬 지붕
1층 마루바닥 밑의 장작

5B

잠실이 생기기까지 ①

Step1-양잠업의 최첨단지에서 양잠을 배우다

당시 쇼나이 지방의 양잠업은 뒤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전국 1위를 목표로 하자’며, 메이지 7년(1874), 일본 제일의 양잠가로 불리고 있던 죠슈시마무라의 다지마 부헤이(田島武平)와 다지마 야헤이(田島弥平)의 집에 실습생 17명을 파견. 약 70일 동안 최첨단 양잠 기술과 잠실의 구조에 대해 배웠습니다.

다지마 야헤이의 옛집(군마현 이세사키시 사카이시마무라)
다지마 야헤이의 옛집은 2014년에 도미오카 제사장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Step2-숙련된 건축 장인에게 의뢰하다

개척장에서는 실습생이 돌아오자 곧바로 잠실 건축을 위한 검토를 시작했고, 다카하시 가네키치(高橋兼吉)에게 건축을 의뢰했습니다. 다카하시는 다지마 야헤이의 시마무라식 잠실을 모델로 잠실을 설계하여 1년 만에 4동의 건물을 완성했습니다. 이듬해, 다카하시가 구 쇼나이 번주 사카이 가문의 전용 건축사가 되었기 때문에, 잠실 건축은 쓰루오카 밋카마치의 명공 소마 도미키치(相馬富吉)가 인계했습니다.

다카하시 가네키치/구 쓰루오카 경찰서 청사
다카하시 가네키치의 건축물로는 쇼나이 신사의 신전, 젠포지 절의 5층탑, 산쿄 창고 등이 있고, 구 쓰루오카 경찰서와 구 히가시타가와군의 군청사 등 서양의 건축을 모방한 의양풍 건축도 다수 남겼습니다.

5B-2

잠실이 생기기까지 ②

Step3-모두가 힘을 합쳐 짓다

실제의 건축은 개척사 뿐만이 아니라, 쇼나이 일대 사람들의 협조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목재는 쇼나이 각지 및 모가미 지방에서도 조달되었는데, 모가미 지방에서 목재를 옮길 때는 뗏목에 싣고 모가미 강을 떠내려가서, 교덴 강, 후지시마 강, 구로세 강으로 거슬러 올라간 후, 현재의 하구로마치 구로세부터는 직접 짊어지고 운반했습니다. 전체 길이가 38.22m나 되는 목재는 강의 커브를 돌지 못했기 때문에 도중에 절단해서 운반하는 등, 재료 조달 단계부터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도왔습니다.

Step4-일본 최대 규모의 양잠지대 완성

이로써 메이지 8년(1875), 길이 38.22m, 폭 9.1m, 높이 10.68m의 거대한 잠실이 4동 완성되었습니다. 모델로 삼은 시마무라식 잠실의 약 2배의 크기였습니다. 이듬해에는 4동이 추가로 완성. 마쓰가오카를 시찰하기 위해 방문한 메이지 정부의 내무경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거대한 잠실이 늘어선 모습에 매우 놀라 ‘오래도록 일본의 보배가 되어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3개월 후에 방문한 태정대신 산조 사네토미(三条實美)도 극찬하며 개척사업을 격려했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마쓰가오카 양잠지대
메이지 10년(1877)에는 단층 잠실이 2동 완공되어 3년 동안에 모두 10동의 잠실이 건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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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나무 장작

애누에는 바닥난방 환경에서 사육

메이지 15년(1882)경부터 마쓰가오카 개척장에 도입된 온난육에 의한 사육 방법입니다. 1~3령(부화한 지 8일)의 작은 애누에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장작을 이용한 바닥난방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마루바닥 밑에 화로를 설치하고 생나무를 깐 후, 그 위에 짚재와 숯, 다시 짚재를 덮어씌웁니다. 이렇게 하면 생나무가 서서히 타게 되므로, 연료를 보충하지 않고도 따뜻한 환경에서 기를 수 있었습니다.

장작을 이용한 바닥난방 기법

1층의 화로

2층의 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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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창

큰누에는 통풍이 잘 되는 환경에서 사육

주마창이란 일정한 폭의 세로판(창살)을 앞뒤로 늘어놓은 창입니다. 바깥쪽의 창살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안쪽의 창살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통풍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2층의 창문에는 주마창과 함께 누에들이 부드러운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미닫이 장지를 설치하여 큰누에를 청량육 방법으로 길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육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Point1 / 안쪽의 창살을 여닫으며 통풍을 조절했습니다.

Point2 / 자연광은 주마창 윗부분의 장지를 통해 들어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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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건축가에 따라 다른 기둥 형태

현존하는 5개 잠실의 기본적인 구조는 같지만, 기둥의 형태가 다릅니다. 다카하시 가네키치가 건축한 1·2·4번은 사각형이고, 소마 도미키치가 건축한 3·5번은 팔각형입니다. 또 3·5번에 설치된 기둥의 직경이 더 굵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도 넓습니다.

2번 잠실의 기둥 형태

다카하시 가네키치가 설계한 잠실은 사각기둥

5번 잠실의 기둥 형태

소마 도미키치가 설계한 잠실은 팔각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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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지대

10동 잠실의 그 후

메이지 10년(1877)까지 지어진 10동 건물 중 지금도 남아있는 것은 5동입니다.

・9번과 10번은 메이지 17년(1884)에 대폭풍으로 붕괴

・8번은 화재로 소실된 쓰루오카 초요 학교의 재건을 위해 메이지 17년(1884)에 이축

・7번은 쇼와 9년(1934)에 화재로 일부 소실된 마쓰오카 제사소 마쓰미네 분공장으로 이축

・6번은 쇼와 10년(1935)에 신설된 마쓰오카 직물업 견직물 공장으로 이축
나머지 5동의 잠실에서는 양잠을 하고 있었는데, 쇼나이 일대에 양잠업이 널리 보급된 1934년경부터 1965년대 전반까지는 잠종 제조를 했습니다. 그 후는 전시 시설이나 갤러리 등 잠실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게 되었습니다.

<1965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활용 예>

1번: 잠종 제조 → 나메코 버섯 재배장 → 마쓰가오카 개척 기념관

2번: 원잠종 사육 → 식당·갤러리·도예교실·숍 등

3번: 잠종 제조 → 전기 부품 가공 → 메리야스 봉제 → 곶감 제조·누에 전시 사육

4번: 치잠(애누에) 사육실→쇼나이 농기구관→ 실크 산업 체험형 시설

5번: 잠종 제조→ 영화자료관→ 잠실 구조 견학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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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의 기와

쓰루가오카성의 기와를 잠실의 지붕으로

메이지 9년(1876)에 건축된 잠실의 지붕에는 쓰루가오카성의 기와가 사용되었습니다. 한명 한명이 기와를 등에 업거나 어깨에 짊어지고 쓰루가오카성에서 마쓰가오카까지 약 7㎞를 걸어서 운반했습니다. 지붕을 보면 구 쇼나이 번주 사카이 가문의 괭이밥 문양이 새겨진 기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개척 당시 모습을 담은 그림 ‘능상첩’에서

괭이밥 문양이 새겨진 마쓰가오카 개척장 잠실의 기와

5H

3층부

소슬 지붕으로 환기하다

누에를 기르려면 통풍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2층의 지붕 위에 ‘소슬 지붕’이라는 작은 지붕을 설치하여 실내의 공기 순환과 환기를 시켜주었습니다.

※어른이 들어가 설 수 있을 정도의 높이는 되지만, 높은 곳이기 때문에 일반 공개는 하지 않습니다.

잠실의 단면도
소슬 지붕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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